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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하나님을 아는 길 - 세계

김관수 목사

제 2장 하나님을 아는 길-세계

- 우리는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비록 살기 위해 하나님을 알고자 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발견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디모데전서 6장 15절에서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 어떤 랍비에게 한 사람이 와서 하나님을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랍비는 그를 데리고 나가 빛나는 하늘의 해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눈이 너무 부셔서 해를 쳐다볼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랍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햇빛도 보려면 우리의 눈이 견디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들에게 스스로 알리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셔서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 그러나 그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시면 그분을 알기도 전에 우리는 그만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알리시되, 자신을 숨기시고 나타내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대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숨어계시다’는 것입니다.
- 이사야 45장 15절을 보겠습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계속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제가 사는 부산에서 서울에 가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이용해 갈 수도 있고, 기차나 버스 혹은 자가용을 이용해 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힘들지만 걸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을 아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 곧 세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을 알기 위한 길에서는 자연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삶의 이 세 길을 모두 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연과 성경과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온전히 알게 됩니다.
- 오늘 우리는 그 가운데 첫 번째인 자연 곧 세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사람들이 자연을 볼 때 느끼는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을 힘으로 느끼는 것이고, 둘째는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자연 그 너머에 있는 어떤 신비를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자연과 관계를 맺는 우리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 자연을 힘으로 느낄 때, 자연은 사람들에게 자연을 숭배하도록 이끕니다. 또한 자연을 통해 사람들이 힘을 기르려 합니다. 이 때 자연은 인간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개발의 대상이 됩니다.
- 자연을 아름다움으로 보게 될 때, 자연은 즐기고 노래하는 대상이 됩니다.
- 그리고 자연을 자연 그 너머에 있는 어떤 신비를 느낄 때에는, 어떤 경외심이 생깁니다.
-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연의 으뜸가는 가치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데 있다고 보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자연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이 사람들의 첫째 목적인 것 같습니다.
-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자연이란 개발의 대상이고, 옳고 그름의 최후의 기준은 자신의 이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의 밤은 화려한 불빛 뒤편에 오직 이익을 쫓는 인간들의 두려움과 공포, 낙심과 절망이 넘쳐 남는다.

- 옛날 그리스인들은 알기 위해서 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사람들은 공경하기 위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신의 이욕을 채우기 위해 배웁니다.
-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이를 재는 법과 무게를 다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우러러보는 법, 존경하고 경외하는 법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시편이 주제로 삼은 것은 자연의 매력이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 우리가 이 자연을 힘으로 보게 될 때 자연을 숭상하거나 자연의 힘에 맞서 싸워 정복하고자 합니다. 자연을 아름다움으로 볼게 될 때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시인이 되거나 목자주의자가 됩니다.

- 우리가 보는 이 자연은 그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은 이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 로마서 1장 19절에서 20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 여기에 보면, 자연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만물 뒤에 숨어 계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했습니다.
- ‘세계’란 말의 히브리어는 ‘올람’입니다. 그런데 ‘올람’이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시간적 개념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학자들 가운데는 ‘올람’이라는 말이 ‘숨기다’는 뜻을 가진 ‘알람’에서 왔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즉 보이는 이 세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숨어 계신 장소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시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도 견딜 수 있도록 보이는 세계 뒤에 자신을 숨기고 알리십니다.
-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세계는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본질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 성경은 세계의 그 어떤 것도 당연지사 혹은 우연의 산물로 보지 않습니다.
- 자연의 질서와 법칙은 자연 안에 본래부터 있는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습니다.
- 자연은 하나님의 영속적인 보살핌의 대상입니다. 이 하나님 때문에 세계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세계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로 하늘과 땅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 시편 102편 25절에서 2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토함산 중턱 자락에 있는 석굴암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그 아래 있는 땅들과 집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 산과 석굴암, 그리고 넓은 들판들은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천년 이상이나 그대로 있는데, 그 당시 영웅호걸들은 다 어디갔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러나 지금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그것들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스스로 혹은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조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이 모든 세계가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으며, 오직 하나님 때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시편 119편 91을 보겠습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 이 말씀에 의하면 하늘과 땅이 오늘까지 질서를 따라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그 까닭은 ‘주의 종’이 된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 종이란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천지만물이 다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만물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러므로 자연 숭배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연 숭배자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욥기 31장 26절에서 28절입니다.
☞ 욥 31:26-28 “언제 태양의 빛남과 달의 명랑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가만히 유혹되어 손에 입맞추었던가 이 역시 재판장에게 벌 받을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니라”
- 자연 숭배는 벌 받을 죄악이며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 우리는 자연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벗 삼아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우리의 벗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지으시고 우리 가까이 있게 하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우리가 마주 대하고 있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한님에 의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어느 날 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해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 마태복음 6장 26절과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짐승들을 집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씻겨주고 먹여줍니다. 데리고 놀러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물원에 있는 많은 동물들도 사육하는 사람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 혹시 우리가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람에 의해 모든 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저 새는 어떻게 먹고 살지! 자기가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지도 않았고, 거둔 곡식들을 창고에 들여 놓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 저 아름다운 꽃은 어떻게 해서 자라지! 꽃을 피우기 위해 자기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애를 써서 그렇게 된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 보아라.’
- 시편 104편 25절에서 29절을 보면, 크고 넓은 바다에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04편 25절에서 29절입니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매일 일어나는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의 기적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 그럼 사람은 어떻습니까? 시편 139편 1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 공동번역에 보면, 이 구절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당신은 이 몸을 속속들이 잘 아나이다.’

- 우리가 우리의 이욕을 따라 정신없이 살고 있는 지금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도 하나님의 베푸신 놀라운 기적에 의해 나도 이 세계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저절로 혹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 이 세계가 사는데 있어 필요한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냅니다.
-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 40편 5절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 그러므로 우리를 살게 하는 일상적인 경험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게 하시는 기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면서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여야 합니다.
-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를 살게 하시고, 이 세계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만 산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러러 경배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경외’라고 합니다.
- 욥기 28장 28절에는 이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리켜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시편 111편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지혜란 무엇을 말할까요?
-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능력을 뜻합니다. 보이는 세계 뒤에 숨어계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 그러므로 참된 지혜란 세계를 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물이지만, 그 너머에 초월해 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 시편 19편 1-4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시편 기자는 하늘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그는 낮이 낮에게, 밤이 밤에게 전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낮과 밤이 전한 지식은 사람들의 언어나 들리는 소리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에 세계 끝까지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사야 6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는 이상 가운데서,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다고 했습니다.
-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공기가 공간을 채우고 물이 바다를 채우고 있는 그런 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온 땅이 하나님의 돌보시는 사랑과 능력의 손길에 의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 시편 113편 5절 후반부터 9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온 세계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고 있고 살고 있습니다.
- 이처럼 세계를 마주 대하고 살면서 들었던 바로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능력,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곧 지혜인 것입니다.
-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최소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온 세계를 살게 하십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이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는 왜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지 못할까요?
- 그 까닭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과 교만, 물질이나 출세에 대한 탐욕과, 행복이 멀어지는 것에 대한 지나친 근심,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 때문입니다.
- 사람들의 비극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충만히 임재하여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눈멀어 있는 것입니다.
- 작은 동전 하나로 눈을 가려 봅시다. 그러면 아무리 아름다운 산이라 할찌라도 그것이 가려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세계에서의 허영에 찬 삶에 대한 탐욕 하나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이는 하나님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면서도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이사야 42장 20절에는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 또한 야고보 4장 3절에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였고, 잠언 14장 6절에는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아가서 5장 2절의 말씀처럼 “잘지라도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잘지라도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눈앞의 달콤한 유혹과 성공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바쁜 삶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그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민감한 자에게 자신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뒤에 스스로 숨어계시지만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들키기를 바라십니다.
- 잠언 25장 2절을 보면,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 라고 했습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을 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히브리어에서 회개를 가리키는 ‘테수바’란 ‘돌아섬’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대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만물을 살게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대답입니다.
- 모든 물질을 숭상하는 것을 버리고, 모든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그리하여 우리를 살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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