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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하나님을 아는 길 - 하나님의 형상 인간

김관수 목사

제 4 장 하나님을 아는 길-하나님의 형상 인간

-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아주 난감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 선생님께서는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존귀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과학 선생님은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왜 존귀하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는데.’
- 학교 다닐 때 제가 제일 먼저 배운 인간에 대한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벤쟈민 프랭클린 이 말한 ‘호모 파베르’ 즉 ‘인간은 연장을 만드는 동물이다’도 기억이 납니다.
- 한 번 물어봅시다. 사람은 과연 동물과 같은가요? 아니면 다른 동물보다는 좀 더 진화된 동물인가요?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과연 용납이 됩니까?
- 만약 사람들이 나에게 욕을 한다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욕이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욕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거기에는 짐승에 빗댄 것들이 참 많습니다.
-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간을 가리켜 짐승에 비유한 것을 들을 때, 그것이 욕이 아니라고 생각되는지는 몰라도, 너무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산업이 발달하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현대인들은 사람을 기계나 상품으로 간주합니다. 생산성이 얼마나 되는지, 상품가치가 있는지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근로자들과 모든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 나이가 많거나 병들어 생산성이 떨어지면 퇴출 대상이 됩니다. 상품성이 떨어지면 아무리 인기 있는 자라 할찌라도 그들의 세계에서 버려집니다.
- 우리가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사실은 나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나의 동물성이나 기계성 혹은 상품성입니까? 아니면 나의 인간성입니까? 나는 동물이나 기계나 상품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인간이기를 원합니까?
- 나는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거나 기계 혹은 상품으로 여기는 인간에 대한 정의들을 거부합니다. 나는 사람이기를 원하며,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사람은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고 꼴지워집니다. “사람은 동물이다”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동물 대하듯 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동물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을 기계나 상품으로 보게 되면, 그는 소모성 존재나 일시적 존재로 전락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버림을 당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쓸모없는 자로 간주합니다.
-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간상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품고 있는 인간상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스스로 도덕적 삶을 살지 않는 동물이나 기계나 상품이 인간에게 선한 도덕적 충동을 심어줄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에 대해 무엇이라 정의할까요?
- 창세기 1장 26-2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그리고 창세기 9장 5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동물이나 기계나 어떤 상품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현대인들은 진화론과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 본연의 독특한 특성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 사람을 기타 다른 피조물과 구별 짓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그처럼 존귀한 까닭입니다.

- 그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만들어졌다”, “하나님을 닮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닮았을까요?
- 창세기는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지만, 그것은 태초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태초 이전으로 소급되는 어떤 사실이 있습니다.
- 성경을 살펴보면 태초 이전의 사실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그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7장 5절과 24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창세 이전에 창세 이전에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사랑을 기초로 한 인격적 관계가 있었습니다.
- 베드로전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한 계획을 갖고 계셨으며, 에베소서 1장 4절에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사상과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이심을 증거하는 용어입니다. 또한 디모데 후서 1장 9절을 보면, 창세 전부터 부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뜻을 함께 할 자를 찾고 계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디도서 1장 2절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과학은 아버지가 있으니 자식이 있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합니다. 과학에서는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 수 없으며, 비(非)생명에서 생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유(有)에서 유(有)가 나며, 생명에서 생명이 납니다.
- 사람이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꿈꾸고,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생각을 가지고 의지의 힘으로 선택하며 약속을 하는 까닭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그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창세기 1장 26절부터 28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려 하셨을 때,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지었다고 했습니다.
- 즉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세계가 우리이듯이 인간들도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엘로하’의 복수로서 하나님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하나님들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실 때 사람들에게 복수로 나타내셨을까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복수는 강조를 나타내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 창세기 1장 2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복수인 남자와 여자 곧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인 것처럼 말입니다.
- 창세기 2장 18절을 보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에게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 여자를 남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완벽하게 “좋았더라”가 되었습니다.
- 창세기 2장 24절을 보면, 결혼에 대해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둘인데 하나인 것, 이것이 결혼제도의 신비이며 목적입니다. 즉 각각의 사람이 연합하여 우리가 되는 것 이것이 결혼제도의 의미입니다.
-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후에, 자기에게 적절한 짝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담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의식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맨 처음 지었던 남자의 이름은 아담입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맨 처음 남자의 이름이면서 그 뜻은 인류입니다.
- 하나님은 맨 처음에 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안에서 인류를 목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이라는 한 개인을 창조하실 때 인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셨습니다. 신명기 29장 14절에서 15절을 보면, 하나님께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하고만 맺으신 아니라 그 때 이후 모든 세대와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고 했습니다.
-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단 하나밖에 없는 자로 태어납니다. 저 김관수라는 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자는 있을 수 있으나,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똑 같은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없어지면 사실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가치 있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나를 스스로 해치거나 누군가를 해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자를 해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처럼 가치 있는 존재라 할찌라도, 그 가치는 인류를 위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 창세기 5장 2절을 보겠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각각의 사람이 “우리”가 될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 때문에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말의 또 하나의 의미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28절에 나타나 있듯이 인간 창조의 목적과 관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동참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일’ 혹은 ‘노동’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노동이란 먹고 사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라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렇다면, 타락이란 무엇일까요?
- 로마서 1장 22절에서 23절을 보겠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인간의 타락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꾼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품성과 그 뜻을 반영하는 삶을 살지 않고 육체적 본능을 쫓고 탐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간의 하나됨의 관계를 단절하는, “우리”의 삶을 쫓지 않고 “나”의 삶을 쫒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창조의 섭리로서의 노동을 파괴하고 게으른 본성 속에 자신을 가두거나 오직 자신의 목숨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임에 대해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버러지와 금수의 형상으로 바꾸지 않습니까?
-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떠나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그 삶은 자기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목숨을 부지기에 전전긍긍하는 금수와 버러지와 같은 자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누구시며 왜 그분은 사람이 되셨을까요?
- 골로새서 1장 3절을 보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곧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 인간 예수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분께서 사람이 되셨습니까?
- 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의 교훈과 삶을 통해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타락함으로 잃어버린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알게 하고 그것을 찾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다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18절에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목적은 ‘하나님 따로 인간 따로, 나 따로 너 따로’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 나와 너의 연합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안식일에 대한 논쟁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 골로새서 3장 10절을 보면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 에베소서 5장 1절에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온전해 질 때까지 그리스도를 본 받아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참된 하나됨이 있어야 합니다. 차이를 뛰어넘는 온전한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이 하나됨, 이 연합이 있으려면 우리 예수님처럼 온전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랑만이 모든 관계를 바르게 지켜 줍니다.
- 로마서 13장 20절을 보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5장 14절에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이루는 온전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 저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가씨들이 되었습니다만, 사람들은 가끔 두 아이를 보면서 아빠 닮았다거나 엄마 닮았다는 말을 합니다. 둘째 딸이 아주 어렸을 때, 누가 자기를 가리켜 아빠를 닮았다고 하면 ‘아니에요 전 엄마 닮았어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제가 그 아이에게 아주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 닮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아이의 모습에 그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을 닮은 자로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모습을 담아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속에 숨어 계십니다.
-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 저와 여러분이 사랑에 기초하여 함께 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살 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 기초한 우리를 이루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노동 이런 삶이 진정으로 우리를 존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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