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성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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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김관수 목사

-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이든, 어떤 사회이든, 어떤 나라이든 적합한 원칙에 따라 다스려질 때, 그리고 그 원칙을 서로 존중할 때 함께 잘 살게 됩니다. 그 원칙을 우리는 법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법이 없다면,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이 사랑에 기초하여 행사될 때 그 조직은 튼튼하게 되고 유지됩니다.
-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법이 있습니다. 시편 89편 14절을 보면,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법에 의해 공평하게 통치되며, 그 법은 사랑에 기초한 법이라는 뜻입니다.
- 오늘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주었던 최초의 법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을 먹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 사람다운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8절에서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고 했고, 에덴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자유롭게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결단코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셨던 인간들에게 주셨던 최초의 법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이 범죄하지 않았고 결국 죽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그와 같은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무엇을 말할까요?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결코 악한 것을 전혀 만드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쁜 나무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의 나무를 만드셨을 뿐입니다. 이 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요소 즉 선악을 알게 하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 선이나 악이란 도덕적 성질을 가리킵니다. 나무 자체는 도덕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어떤 나무도 그 나무 자체가 선하거나 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다고 해서 그 열매 자체가 우리를 선하게 만들거나 악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과연 무엇입니까?
- 제가 어릴 적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퇴근하셔서 집에 오시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뚜껑이 있는 제법 큰 밥그릇에 밥을 담으시고는 ‘이 밥은 아버지 밥이니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불을 뒤집어 씌우시고는 그 밥을 아랫목에 두셨습니다.
-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아버지를 위해 따로 담으신 밥과 제가 먹은 밥이 다른 밥인가요? 아닙니다. 같은 밥솥에서 나온 같은 밥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밥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솥에서 나온 같은 밥이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구별하셔서 그 밥에다가 의미를 부여하셨기에 다른 밥인 것입니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역시 그와 같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특별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구별하여 그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그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의미가 있게 된 나무를 가리킵니다. 그 나무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 그 나무에 하나님께서 의미를 부여하셨기에, 그 나무가 의미 있는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 그럼 왜 그것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했을까요?
- 먼저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 선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선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합니다. 미가서 6장 8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선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선이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선이란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악이란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2장 19절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여기서 악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버림과 우리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악이란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신 것은,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먹지 않으면 그것이 선이 되고, 불순종을 하여 그것을 먹으면 악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둘째로, 그럼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왜 주셨을까요?
- 성경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언급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생기 곧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살아있는 호흡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기록 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서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이유를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흙에서 왔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흙입니다. 그런데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살아있는 호흡하는 존재가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숨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흙에서 지음을 받은 자로써 오직 하나님의 숨 때문에 사는 자임을 인정하고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숨이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 사람다운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함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인정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 다시 말해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의존함으로써만,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만 사는 존재임을 항상 인식시켜 주는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하나님을 의존하느냐 아니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달라지는 시금석인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금하신 이유이며,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주신 참 이유입니다.
- 그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주어진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명나무 역시 나무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명나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나무인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생명나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그것을 먹을 때마다 알게 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결국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인간을 살게 하신다는 표징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에 살게 하실 때, 먹지 말도록 금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생명나무와 함께 에덴동산 가운데 있었습니다. 동산 가운데 있었다는 말은 인간의 삶의 영역 중심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선악을 알게 나무와 생명나무가 에덴동산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이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삶을 죽음이냐 생명이냐로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50절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그대로 이르는 것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 역시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명령을 순종할 때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사람됨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게 되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 사도 요한이 요한삼서 1장 4절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셋째,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혹은 율법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시는 분이라는 오해를 가지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법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까요?
-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도록 금하신 것에 대해 어떤 제한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임의로’ 즉 ‘자유로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홉가지 할 수 있는 일보다, 한 가지 하지 못하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습니다. 욥기 9장 12절을 보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을 하시나이까?” 라며 따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 금지는 오히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이 금지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금지를 지킴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에 의해 사는 자임을 나타냅니다.
- 자연계에도 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태초의 인간들에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금지의 명령으로 나타났고, 옛날 이스라엘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십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것을 단순히 외부적으로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에 뿌리를 둔 순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마음과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제공하여야 합니다.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지극히 실제적인 현실입니다.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 사도 바울도 역시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실제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 곧 십계명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같은 차원에 두고 언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하셨고, 21절에서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며, 그것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본질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순종을 통해 나타납니다.

넷째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선택의 경이로 하는 사랑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 선택하여 자유로 하는 순종이지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을 따라 “Enter”를 칠 때 거기에 따라 응답을 하는 컴퓨터가 아닙니다.
- 인간의 운명의 기준은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기준인 하나님의 법은 사랑이 그 본질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라도 선택의 경이로 사랑합니다.
- 하나님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부정적 명령에는 그 명령을 어겨 그 실과를 따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은 대부분 부정적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억압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부정적 명령은 인간이 그 명령을 자유로이 거스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의 요구는 인간의 선택의 권리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악의 가능성도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 가능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의지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악의 가능성이 악을 “행동화”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능성을 두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 선택을 유효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을 의미 있는 인간으로 대우하신 것입니다. 선택이 없는 사랑은 그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 우리는 목적 없이 이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대충 알아서 살도록 태어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인간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가득 채우는 것과 이 세계를 하나님의 통치 원칙인 사랑에 기초한 공의가 실현되는 그런 세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인간에게 강요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사랑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의지를 강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로 창조되었습니다.”(부조, 331)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당신께로 이끄십니다. 그분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강제 수단은 사랑의 강권입니다.”(보훈, 127)
- 시편 89편 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 여기 보면, 주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와 공의보다 앞서 행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함과 진실함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에 기초한 법에 따라 유지되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법에 자유로이 선택함으로 순종할 때 살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인간으로부터 거절과 버림을 당할지언정 인간에게 당신의 명령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로, 당신을 의지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인간이 가지는 진정한 위대함입니다.
-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그 계명을 우리가 기쁘게 감사함으로 자유로이 지키기 때문입니다.
-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만 살 수 있는 자였지만,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으며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불순종이 가능하며, 그리하여 인간이 받은 그 부르심(사명)에서 떠날 수가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절하기로 선택할 때 막지 않으십니다(롬 1:24, 26, 28). 이렇게 하는 것이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의미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를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자로 지으셨음을 가르쳐 줍니다.

- 그럼 만약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때, 하나님을 버리기로 선택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시기만 할까요? 그래서 사람이 죽든지 말든지 내 버려 두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따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시기 전에,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기로 선택했을 때, 그리하여 죽음을 자초할 때를 대비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구속의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 구속의 계획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1장 20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인류의 구원을 위해 미리 알려신 바 된 자로서,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 그리고 에베소서 1장 4절에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선택하셨다고 했습니다.
- 또한 디도서 1장 2절에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생을 약속하셨다고 했습니다.
- 바로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거절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인간이 하나님을 거절할 때에라도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미리 다 세우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며, 오직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만 유지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야고보서 1장 25절에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2절에는 “자유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유로이 순종하면,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 마지막으로 신명기 30장 20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 여기서 ‘부종하라’는 말은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딱 달라 붙어 산다면, 우리는 생명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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