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성경마을

제목 없음


제8장 하나님의 찾음과 인간의 피함

김관수 목사

제8장 하나님의 찾음과 인간의 피함

- 창세기 3장 8절에서 10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성경이 말하는 죄란 그 본질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을 할 때에라도 참된 신은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섬깁니다.
-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진정한 자아성취나 자유나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혔으며, 알지 못할 불안과 두려움이었습니다. 8절의 ‘날이 서늘할 때’란, 바람이 부는 때를 가리킵니다. 바람이 부는 스산한 날, 바로 이 날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의 마음 상태를 묘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고, 인생의 주인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설령 남들보다 많은 것을 가졌을지라도 오늘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면서 혹은 스스로를 달래면서 꺼져 가는 목숨을 겨우 붙잡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이 구원과 영생을 위해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에 의해 거절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신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거절하고 버린 인간을 찾으셨습니다.
- 8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음성’이란 ‘울부짖음’을 뜻하며, ‘거닐다’는 말은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찾으시되 울부짖으며 온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찾으십니다. 이것은 마치 집 나간 자식의 이름을 부르되 울부짖으며 온 도시를 헤매며 찾아 나선 어머니의 모습과 같습니다.
- 그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언제부터 찾으셨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그 순간부터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처음부터’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떠났는지 스스로 물었을 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조금도 모를 만큼 아득히 먼 그 때부터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형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을 찾으신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에 있어서 사랑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은 그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 예수님 이야기는 하나님이 죄악 가운데서,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죽어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고,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고, 우리가 겪는 죽음의 자리까지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찾아오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왜 찾으십니까?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까? 요한복음 3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을만한 어떤 자격을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 로마서 5장 8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를 찾으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9절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다면, 우리가 만약 가족들이나 성도들, 그리고 이웃이나 친구 사이에서 어떤 문제로 간격이 생겼을 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 상처를 받은 사람이 먼저 용서와 화해의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 그런데 사람은 사람을 찾는 하나님에 대해 피하여 숨습니다.
- 하나님을 떠나 불안과 공포에 떠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먼저 찾아오시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그들은 안타깝게도 동산을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울부짖고 찾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가운데 숨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 여기서 ‘사이’란 ‘가운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숨다’란 ‘스스로 숨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 사람들은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낯을 두려워하여 피한다는 사실입니다.
-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숨겨 놓은 돈을 훔쳐 평소에 먹고 싶었던 카라멜을 사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자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들을 불러 놓고, 누가 그 돈을 가져갔는지 캐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께서 제 앞에 오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눈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가 잘못했을 때, 어머니의 얼굴과 눈을 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는 원래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의 죄의식이 엄마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어머니를 피하게 합니다.
- 마찬가지로 원래 하나님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두려운 대상으로 바꿉니다. 죄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도록 하는 힘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성을 죗된 본성 혹은 인간의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죄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피하여 자신을 스스로 숨기려는 본성을 인간에게 심어 놓습니다. 죄악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를 자꾸만 피하고 자신을 숨기려 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붙잡히기를 두려워합니다.
-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선을 배우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은 너무 쉽게 배웁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기보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선을 행하기보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에서 20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우리가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배우고 행하는데 더 쉬운 까닭은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 예수님을 현재 믿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진리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부터 도망가려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처럼 어렵습니다.
-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의 삶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성경은 이 기적이 하나님 곧 성령의 역사에 따른 결과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찾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여 하나님을 피하는 우리의 죄입니다. 이 죄를 이기게 하는 힘이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에 순응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요,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성령은 우리 스스로 깨지 못하는 우리의 죄의 두께를 뚫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 갈라디아서 5장 16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인간의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은 성령의 역사에 자신의 의지를 쳐서 굴복시키는 과정을 통해 극복됩니다. 이 과정은 평생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를 성화라고 합니다.
- 성화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경험 속에서 평생을 통해 자신의 이기심과 죄로 기우는 경향과 믿음으로 하는 선한 싸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매일 새롭게 구하시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시길 바랍니다.

둘째, 인간은 삶에 있어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안을 경험할 때 이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식과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신을 숨겨줄 어떤 것(곳)을 스스로 찾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발견한 것(곳)은 ‘동산에 있는 나무 가운데’였습니다.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스스로 숨는 ‘동산에 있는 나무 가운데’는 어디일까요? 제가 보기에 컴퓨터 게임이나 TV 혹은 영화, 스포츠 관람, 대중음악 청취 등 현대의 대중문화 한 가운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해야 할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 스스로를 숨기는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이나 시끄러운 곳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면서 혹은 요가나 참선을 행하면서 스스로를 숨기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이와 같은 ‘동산에 있는 나무 가운데’는 우리를 숨겨둘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하여 숨는 나무는 큰 바람과 번쩍이는 번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어떤 일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스스로 숨길 수는 없습니다.
-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피하여 숨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숨은 곳에서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여 피하고 어떤 것(곳)에 자신을 숨기는 자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숨은 곳에서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시며 사람을 부르십니다.
- 하나님은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 뒤에 숨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이 부름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는 어머니의 음성과 같은 부름입니다.
- 아담은 인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의 개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부르실 뿐 아니라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피하여 숨은 곳에서 그 분 앞에 나아오도록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듯 그렇게 부르십니다.
-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숨바꼭질 놀이에서 술래가 숨은 자를 찾듯 그렇게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은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외침이자 절규입니다.
-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 또한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이 질문은 인간 존재의 현 주소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참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속박 가운데 있습니까? 진리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진리 밖에 있습니까? 생명의 빛에 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음의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밖에 있습니까?
-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물음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물음은 우리 스스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하여, 우리를 숨길 수 없는 나무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 그러므로 이는 우리의 존재의 주소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이요, 우리 각 사람을 불러내어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찾음의 소리이고 외침이며 울부짖음입니다.
- 오늘도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과 고독 가운데 떠는 영혼을,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자들을 구석구석 찾으시면서 ‘아담’ 곧 온 인류와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짖는 하나님의 외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이 외침은 오늘도 우리의 양심에 생생히 들려옵니다.
- 그러므로 모든 고독과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기 스스로 만든 모든 피난처에서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모든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의 참된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 시편 62편 8절을 보겠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지금 나를 간절히 찾으시고 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시는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그분의 우리를 찾으심과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대답입니다.
-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7절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 요한일서 1장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 이사야 44장 22절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44장 22절입니다.
☞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우리의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벌써 도말하였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벌써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구속하였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미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일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하셨습니까? 창세 전부터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거절할 수도 있도록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하기 전부터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존재하기 전부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기 전부터입니다.
- 하나님은 벌써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기 전에, 우리의 구원을 요청하기 전에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구원을 받아들일 때, 그 구원은 실제로 우리 것이 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이렇게 외치는 것은 제가 여러분보다 낫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찾으심과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자입니다.
-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4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로 돌아오십니다(슥 1:3). 그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십니다. 벌써부터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쳐 주십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가 구원 얻기를 참으로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9장 인간의 옷과 ...
김관수 목사

제8장 하나님의 찾음...
김관수 목사

제7장 유혹과 타락
김관수 목사

제6장 선악을 알게 ...
김관수 목사

제5장 인간-흙
김관수 목사

제4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제3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제2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1 [2]

 

Copyrightⓒ 유레카 성경마을 All right reserved. Contact ubibleland@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유레카성경연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성경연구를 도와주는 초교파적 기독교사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