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성경마을

제목 없음


제9장 인간의 옷과 하나님의 옷

김관수 목사

제9장 인간의 옷과 하나님의 옷

- 먼저 창세기 3장 7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 이 구절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선택했을 때, 최초로 습득한 지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최초의 지식은 자기들이 벗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을 줄을 알고’ 하였는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에는 ‘몸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 ‘벗었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죄의식에서 오는 부끄러움 혹은 죄책감을 뜻하기도 하며 몸과 심령의 가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창세기 3장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에게 오셔서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고 물으신 것이었고, 둘째는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 그 때 아담은 둘째 질문인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가 주어 먹었다고 대답하였지만, 첫째 질문인 ‘누가 네가 벗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 왜 그는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자기가 벗었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떠났을 때, 저절로 찾아온 자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질이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하고, 앞으로는 더욱 풍요하리라 여겨지지만 오히려 쇠퇴해 가는 몸을 붙잡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늙어갑니다. 또한 그 영혼은 물질이 풍요해지는 것만큼 부유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가난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지식 곧 몸과 영혼의 가난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왜 죽어가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밝히 말합니다. 사람이 생명이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라고.

1. 우리는 우리가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어떻게 하였습니까? 성경은 그들이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 히브리 성경에는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는 말 앞에 “자기들을 위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그들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던 것입니다.
-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여 벌거벗음을 가리는 모든 행위들을 의미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벌거벗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리고 있을까요? 스스로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리는 무화과 나뭇잎은 오늘날 무엇을 뜻할까요?
-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재물이 자신의 수치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재물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자기의 지위 상승이 자신의 벌거벗음에서 가리울 수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짓밟고서라도 올라서려 합니다.
- 사회는 사회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잘 사는 세계 건설을 위해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최상의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잘못된 삶을 후회하고, 과거의 삶의 빚을 갚고자 남을 도우며 착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물질이나 명예의 헛됨을 깨닫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 이 모든 것들, 부나 명예, 문명의 발달과 교육, 착한 행위들, 종교적 삶 자체는 악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들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억압받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착한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신앙을 가질 때야 비로소 인간이 살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조건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십니다.
-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한 우리의 모든 행위들 배후에는 ‘인간의 자기 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우리의 부와 명예가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그것들은 자기 외의 사람들을 가난과 멸시로 던질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높은 교육 역시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그것들은 오히려 인간을 교만하게 할 것이며, 인간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착한 삶 역시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그것은 인간을 교만하게 하여 자기 방어나 신분 상승의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떻습니까?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 역시 자신을 위한 것일 때, 신은 인간의 욕망 성취의 도구가 될 따름입니다.
- 사람이 자신의 벌거벗음에서 가리우기 위한 이 모든 것들이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잎사귀’입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 행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자기 숭배입니다.

2.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엮은 무화과 나뭇잎은 결국은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잎사귀는 마르면 곧 부서집니다. 만약 사람이 잎사귀를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리운다면 그것은 뜨거운 태양과 강한 바람과 세월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 벌거벗음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영혼의 벌거벗음을 가리는 모든 행위는 일시적이요 순간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 이사야 64장 6절에는 인간의 정직한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 여기에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벌거벗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실상은 더러운 옷과 같고 잎사귀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벌거벗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 그래서 이사야 59장 6절에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백과 주장이 사실은 우리의 고백이자 주장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노력과 애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벌거벗음을 해결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많은 다양한 방법들로 옷을 입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벌거벗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셨을 때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0절입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았을 때 나무 뒤에 숨었는데, 그는 자기를 찾는 하나님께 말하기를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그런데 가만히 성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을 때, 아담은 이미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께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 아담의 대답은 아담이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옷이 자신의 벌거벗음에서 완전히 가려주는 참되고 영원한 옷이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그러므로 아담은 입었지만 실상은 벗었던 것입니다.
-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방법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것이 비록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순간적이고 일시적으로나마 만족과 해방과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는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한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옷들이 아니라 영원한 옷이 필요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영원한 영혼의 생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릴 영원한 옷을 원합니다.

3. 그럼 인간의 벌거벗음을 가리기에 충분한, 다시는 벌거벗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길은 없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 창세기 2장 25절을 보겠습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 이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기로 선택하기 전에 사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구절을 보면, 그들은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벗었다는 말은, 그들 스스로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만 사는 존재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벗었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고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두르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벗었으나 실상은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 창세기 3장 10절에 있는, 아담이 그를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신 하나님께 대답했던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었지만 벗었다고 고백한 그의 말과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입었지만 벗은 자들이며, 또 한 부류는 벗었지만 입은 자들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입었지만 벗은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옷을 입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벗었지만 입은 자들로 만들어 주십니다.
- 창세기 3장 21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여기에 보면 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 영혼의 벌거벗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아담과 그 아내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했습니다.
- 이 가죽옷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가죽옷이란, 옛 말에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한 짐승이 죽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옷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가죽옷이란 짐승의 죽음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결단코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 죽을 운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목격한 최초의 죽음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신들이 아닌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한 한 짐승의 죽음이었습니다.
- 한 짐승의 죽음으로 인해 입혀진 가죽옷! 이것이 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그 짐승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흠 없는 양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 당시의 선지자였던 침례 요한은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가죽옷이란 우리를 벌거벗음에서 가리기 위해,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옷을 의미합니다.
- 그리스도의 옷만이 우리를 벌거벗음으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가립니다.

- 그럼 우리는 이 옷을 어떻게 입습니까?
-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범죄하도록 유혹한 뱀에게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뱀인 사단이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만,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단을 이기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인간을 사단과 그 권세로부터,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최초의 복음입니다.
- 창세기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짓는데, 그 이름은 하와였습니다. 하와란 그 뜻이 ‘생명’입니다. 즉 아담은 여자의 후손이 뱀을 정복하심으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여자의 이름을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아담의 믿음을 반영한 이름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의 벌거벗음을 영원히 가리는 그리스도의 옷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음으로 입습니다.
-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서 2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 이 구절을 보면, 믿음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침례란 물에 잠기는 의식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그 믿음을 침례를 통해 나타냅니다. 침례는 두 가지 행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물에 잠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우리가 물에 잠김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을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새 생명 가운데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과 합하여 침례를 받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실제로 믿고 그 경험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말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인간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임을 시인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여,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돌이켜, 하나님만이 자신을 살게 하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고백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말합니다.
-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옷 입히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벌거벗기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우리 대신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옷을 마련하셨습니다.
- 바로 이 그리스도의 옷만이 영원히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립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성경은 처음부터 끝가지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 외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음으로 우리를 벌거벗음에서 가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벗은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도록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그리하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워진 옷을 벗기시고, 곧 모든 죄와 죄책감과 벌거벗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의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십니다.
- 스가랴 3장 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제하여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우리의 벌거벗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입히시는 옷이기에 결코 그 옷은 낡거나 해어지지 않습니다. 다시는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벌거벗음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벌거벗음에서 옷 입히기 위해 벌거벗김을 당한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한 생명과 만족과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사야 61장 10절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4. 이제 이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 오늘날 사람들은 문명이 가져다 준 여러 혜택 속에서 자신의 수치를 가리는 여러 옷들을 겹겹이 덧입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예수의 옷 위에 여러 다른 지식과 명예와 재물 등의 옷들을 겹겹이 입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전에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이미 우리가 만들어 입고 있는 모든 옷들을 벗어 던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한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실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계시록의 수신자인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 18절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문제는 실상은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부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실상 벗었으나 입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 오늘날 문제는 벗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벗은 존재임을 모르고 오히려 입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여기서 말하는 흰 옷이란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의로운 옷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옷만이 인간을 그 벌거벗음으로부터 온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 성경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종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날 예수님의 재림을 목도하며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요한 계시록 16장 15절입니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이 과연 우리의 벌거벗음에서 가리는 영원한 옷인지 판명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영원한 그리스도의 옷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수치와 벌거벗음을 그대로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그리스도의 옷이라면 그 옷은 우리를 구원하는 옷이 될 것입니다.
- 지금 우리의 죄를 인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옷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키고 결코 벗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제9장 인간의 옷과 ...
김관수 목사

제8장 하나님의 찾음...
김관수 목사

제7장 유혹과 타락
김관수 목사

제6장 선악을 알게 ...
김관수 목사

제5장 인간-흙
김관수 목사

제4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제3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제2장 하나님을 아는...
김관수 목사

 

1 [2]

 

Copyrightⓒ 유레카 성경마을 All right reserved. Contact ubibleland@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유레카성경연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성경연구를 도와주는 초교파적 기독교사이트입니다.